종교목걸이

명품브랜드 [에르메스]

반지마담^^ 2010. 11. 8. 19:12

에르메스가 럭셔리? 난 동의하지 않는다”

                                                               

 - [중앙일보] 기사를 재편집한 내용입니다.

    주얼리를 생산하는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기사라 이렇게 블로거에 올립니다. 

173년 전 말안장서 시작한 [에르메스] - 파트릭 토마 CEO가 밝힌 ‘명품 위의 명품’

 

 

명품 산업계를 피라미드로 그리면,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는 단연 그 정점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만 제품을 만드는 장인 정신, 그에 따른 희소성은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매료시킨다. 최근엔 세계 최대 명품업체인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가 에르메스
지분 17.1%를 사들이면서 에르메스의 ‘매력’이 공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액 19억 유로(약 3조원)의
에르메스가 ‘명품 위의 명품’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를 최근 방한한 파트릭 토마(60)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들었다. 에르메스 성공의 비결을 쫓아갔더니, 뜻밖에도 그 원동력은 위기였다.

글=박현영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 최근 불황의 영향을 받았는가.

 “전혀 받지 않았다.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뛰었고, 이익은 55% 증가했다.
    주가 가치는 올 초 대비 60% 증가했다.”

● 이유를 어떻게 분석하는가.

 “누구나 위기에는 돈을 쓰려하지 않는다. 부자건 아니건 비슷하다. 하지만 투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르메스 제품이 잘 팔린 건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상품은 가장 안전한 투자다.”

● 소비재에 투자라는 말은 과하지 않나.

 “에르메스 제품이 경매에 부쳐지면 거의 대부분 원래 구매 가격보다 비싸게 낙찰된다. 누군가가 쓰던
    중고품임에도 말이다. 더구나 내구성이 좋아 대대로 물려줄 수도 있다. 다른 투자 상품과 달리 추억까지
    담을 수 있지 않은가.”

 에르메스의 모든 가방에는 장인의 데스크 번호와 제작연도가 찍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 수선이
   필요하면 가방을 만든 장인이 직접 고친다. 가죽은 연도별, 색상별, 종류별로 보관해 제작연도와
   가장 가까운 때의 가죽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제품이 ‘반영구적’이라는 게 토마 CEO의 설명이다.

● 그런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뭔가.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다. 장인 정신은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말한다.
   에르메스는 분업을 하지 않고 장인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을 다 한다. 이렇게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18시간쯤 걸린다. 반면 경쟁사는 생산라인을 자동화해 4~5분에 한 개씩 완성품이 나온다.
   결국 사람의 힘이다. 창의성의 모토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바꾼다’이다.
   173년의 전통과 스타일을 이어가기 위해 우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실제로 에르메스 대표 상품인 켈리백은 1935년 출시됐다. 그 모양 그대로, 75년째 절찬 판매 중이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버킨백은 나온 지 26년 됐다. 버킨백은 주문 후 2년이 지나야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대기 명단’으로 유명하다. 켈리백과 버킨백은 최소 1000만원대부터 시작해 크기, 가죽, 색깔에 따라
    최고 수억원대까지 간다.

● 긴 대기자 명단이 마케팅 수법이란 의혹도 있다.

 “내가 1989년 에르메스에 입사했을 때 장인이 300명이었는데, 그때도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장인이 2000명인데도 역시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장인이 되기 위해선 가죽학교 2년, 수련 생활 2년을
    거쳐야 한다. 연간 150~200명의 장인을 배출하고 있는데, 더 이상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원재료 조달 문제도 있다. 매우 특출한 품질의 가죽만 쓰는데, 이런 걸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품질과 타협할 수는 없다.”

● 173년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때는 언제였나.

 “1918년 자동차가 나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에르메스는 말안장과 마구(馬具) 용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세계 왕실과 귀족들에게 최고의 마구를 공급해왔는데,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면서 수요가 급격하게
    줄었다. 회사의 존폐를 고민한 시기였다.”

● 어떻게 위기를 타개했나.

 “당시 회사를 맡고 있던 창업주의 3대손인 에밀 에르메스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그는 자동차 덕에 사람들이 더 멀리, 더 많이 여행을 다니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가방, 실크 스카프,
    벨트, 장신구 등 여행 수요에 맞춘 상품을 새로 내놓았다. 말안장을 만들 때 쓰던 독특한
    박음질법(saddle stit ching)과 고급 가죽은 그대로 써서 전통을 이어갔다.”

● 위기를 기회로 삼은 셈인데.

 “당시 안장을 만들던 장인들은 우리 외에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파산했다. 에르메스가 살아남은 건
    에밀 에르메스가 미래를 내다보고 창의성에 기반해 상품을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이후 사업 분야를 더욱 넓혀 맞춤복, 기성복, 타이, 향수, 시계, 문구류, 자기류, 은식기류까지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말안장도 여전히 판다.

●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품 구성이 폭넓다.

 “에르메스는 SKU(상품 및 재고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분류 단위)가 5만 개 이상이다( ※대형마트
    이마트 매장이 평균 3만~5만 개의 SKU를 보유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어떤 직원도 에르메스의 상품을
    다 알지 못한다. 한 매장은 평균 전체 SKU의 8%를 판매한다. 본점인 생토노레가 가장 많은데도 17%밖에
    구비하지 못했다. 고객이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신사동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찾은 이날, 매장에서 중국 여배우 장쯔이를 우연히
   만났다. 토마 CEO는 “새로운 상품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도시마다, 매장마다 들르는 고객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 명품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는 뭔가.

 “요즘 소비자는 소유하고 과시하는 것보다 스스로 즐기기 위해 소비한다. ‘to have’에서 ‘to be’로
    바뀌고 있다. 그러다 보니 품질을 더 따지게 된다. 자기에게는 최고를 해 주고 싶은 심리가 인간에게는 있다.
   ‘난 소중하니까’란 광고 카피처럼.”

 
● 사업을 키우기 위해 대중화할 생각은 없는가.

 “아니, 전혀 없다. 더 낮은 범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에르메스에 세컨드 라인(가격을 낮춘 자매 브랜드)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에르메스는 현재도 상당히 범접하기 쉽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물론 1000만원, 1억원짜리
    가방도 있지만, 10만원으로 선물을 살 수 있는 곳이 에르메스다. 스카프와 넥타이는 20만원대부터 있다.
    이익의 절반 이상은 이런,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상품에서 나온다. 그래서 에르메스를 ‘럭셔리’라고
    부르는 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면 ‘장인 브랜드’가 적합한 분류일 것이다.”

● 마케팅 정책에 독특한 게 있나.

 “우리는 마케팅적 관점에서 경영하지 않는다. ‘1000달러대 백을 만들자’고 정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물건을 최상급으로 만든 뒤 고객에게 제안하는 ‘오퍼링(offering) 전략이다. 가격도 사후에 결정한다.
    안 팔리면? 접고 다른 가방을 만든다. 좀 오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고객의 필요를 충족하려 하지 않는다.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상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 경제 위기는 지났다고 보는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 지진 후의 여진처럼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에 대비해 은행 빚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충성스러운 고객을 만드는 게 과제다. 명품 산업 최고의 보호 장치는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고객을 꿈꾸게 해야만 우리가 위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 비용 절감도 염두에 두나.

 “비용 절감은 에르메스에선 금기어다. 대신 (더 비싸더라도) 가치를 더하는 전략을 쓴다. 그래서 우리
    상품이 비싼 거다. 좋은 재료, 충분한 시간, 장인의 솜씨 등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85%가
    프랑스에서 생산된다. 시계와 남성복만 각각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노하우와 장인들이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 앞으로 진출할 새로운 분야는.

 “인테리어와 디자인 분야에 점점 더 관여하고 있다. 최근 요트와 헬리콥터,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인테리어를 꾸미는 프로젝트를 여러 건 했다. 중국에선 개인 주택의 인테리어도 맡았다. 일본에선
    고객의 스페셜 오더로 ‘사과를 담는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는 한 사람을 위한 제품도 많이
    만들게 될 것 같다.”

 토마 CEO는 6대째 내려오는 가족기업 에르메스에서 처음으로 선임된 가족이 아닌 경영인이다.
   그는 명문인 파리고등상업학교(ESCP)를 졸업한 뒤 주류업체 페르노리카를 거쳐 89년 에르메스에
   합류했다. 8년간 일하고 7년간 다른 회사로 떠났다가 2003년 복귀했다. 에르메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자 고(故) 장 루이 뒤마 회장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 에르메스의 경영권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5대손 16명을 포함해 모두 60명의 창업주 가족이 회사에 있다. 이들이 모두 합쳐 73%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가족들은 경영권을 직접 행사할 수도 있고 대리인을 위임할 수도 있다. 나는 가족을 대표해서 경영을
    맡는 것이므로, 여전히 가족 경영 회사로 보는 게 맞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인 지난달 23일 LVMH가 에르메스 지분 17.1%를 보유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가족의 지분이 아닌 공개된 주식을 여러 경로로 매입해 에르메스 측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에르메스 가족이
   보유한 지분 73%에는 변함이 없다. LVMH는 주식 공개 매수나 이사회 대표권 요구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우호적인 인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파트릭 토마 CEO는 3일(현지시간)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LVMH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진정으로 우호적인 참여라면 지분 매입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SERICEO의 성공분석 최고 명품의 비결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소량 생산
주문 뒤 2년 이상 기다리기도


에르메스는, 특히 켈리백과 버킨백은 세계 각국의 부호와 할리우드 스타의 애장품이다. 주문 후 2년 이상을
기다려야 이 백을 손에 쥘 수 있는데도 주문이 밀려든다. 켈리백과 버킨백은 최저 가격이 1000만원대일 정도로
‘지나치게’ 비싼데도 불구하고 먹고살 만한 계층에선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갖고 싶은 명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르메스는 지난 20여 년간 한 번도 매출이 감소한 적이 없다. 2008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닥쳤어도
에르메스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올 상반기 에르메스의 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증가했다. 에르메스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영혼을 가진 존재로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희소성이다. 에르메스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1837년 말안장과 마구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1918년 창업자의 손자 에밀 에르메스는 교통수단의 변화를 예측하고 고품질의
 가죽제품과 여행용 가방을 선보였다. 이때 사용한 방법이 안장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독특한 박음질법인
 ‘새들 스티칭(Saddle stitching)’이다. 이후 이는 에르메스의 스타일과 기준이 됐다.

 에르메스는 똑같은 제품을 대량생산하기보다는 고객에게 ‘나만의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철저하게 소량생산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고객이 주문 후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비싸서가 아니라 없어서 못 사는 상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버킨백의 최고급 제품은 한 명의 장인이 수공으로 20시간 이상을 들여 하나의 가방을 만들 정도로 장인의 혼이
  배어 있다. 원자재도 최상급만 사용한다. 에르메스의 가죽제품에 사용되는 가죽은 철저하게 검수를 거쳐서
  구매한 후 화학공정을 배제한 채 참나무 껍질과 함께 구덩이에 넣고 8개월 이상 무두질을 한 후 갈라지지
  않는 가죽만 사용한다. 그런 다음 타조나 악어 등의 가죽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 만든다.

 두 번째 이유는 철저한 장인 존중 정신이다. 에르메스에서 장인은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에르메스라는
   기업 자체의 상징이다. 파리 직업학교의 학생은 에르메스의 로고(H)를 책상에 붙여놓고 공부할 정도로
   에르메스의 가죽장인이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천재적인 장인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에르메스는 자체 장인학교(3년 과정)와 특화된 실습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장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장인은 이 학교 졸업 후에도 2년간의 실습 수련 과정을 마친 후에야 가방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교육과정이 곧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렇다고 명품이 장인 한 명의 예술혼만 가지고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과 끊임없이 호흡하기 때문에
    명품이 만들어진다. 에르메스의 전 제품에는 그 제품을 만든 장인의 고유 ID가 부여되며 수선 요청이 들어오면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그 장인이 직접 수선한다고 한다. 또한 에르메스는 잠재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과
    호흡하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브랜드 매장)를 활용하고 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제품을 제작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다. 실제 버킨백도 에르메스 회장과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 제인 버킨의 우연한 만남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제품으로 연결됐다.

 이처럼 에르메스의 명품은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대량생산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최고의 기술과 품질을
   고집한 결과의 산물이다. 내부 전문가를 별도로 육성하고 이 ‘사람’들을 명품으로 대우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예술혼에 함몰돼 버린다면 그것은 상품이 아닌 박물관에 전시돼야 할 예술작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국제 규모의 그룹이지만 끊임없이 고객과 호흡하며 인간의 손길이 살아 숨쉬는 명품을
   추구해 온 게 바로 에르메스의 성공 비결이었다.

 윤영수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렸던 백
“넉넉한 가방을…” 버킨이 제안한 백


1956년 그레이스 켈리(사진 左)가 임신한 배를 커다란 빨간색 에르메스 가방으로 감춘 사진이 미국 잡지
‘라이프’ 표지에 실렸다. 에르메스는 모나코 왕실의 허가를 얻어 이 가방을 켈리백으로 명명했다.
영화배우에서 왕비가 된 켈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 덕분에 켈리백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켈리백은 1935년 출시됐지만, 그 원형은 1837년 에르메스 창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수들이 사냥을
나갈 때 마구(馬具)를 넣던 큰 주머니를 ‘새들 캐리어(saddle carrier)’라고 불렀다. 이것을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만든 게 ‘프티 삭 오(Petit Sac Haut)’, 즉 켈리백이다. 이 가방은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버킨백의 원형이 됐다.